퇴직금이 들어온 그날의 결정
지난해 5월, 20년 다니던 회사를 그만뒀다. 퇴직금 계좌에 8,400만 원이 들어왔을 때 그 숫자를 보는 순간이 지금도 생생하다.

처음엔 그냥 은행에 두기로 했는데, 일주일 뒤 같은 부서에서 나온 선배가 전화를 걸었다. “너 퇴직금 어디 뒀어?
나는 금융사 추천받아서 연금펀드 들었어.” 그 말에 불안해졌다. 그러다가 일주일 만에 IRP 계좌를 개설했고, 전체 금액의 70%를 한 번에 주식형 펀드에 넣었다.
그게 작년 5월 말이었다.
지금 돌아보니 그 결정이 가장 위험한 순간이었다.
서둘러 결정하면 놓치는 것들
퇴직금을 받으면 대부분 한 달 안에 뭔가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그 심리는 이해가 간다. 이 돈을 그냥 놔두면 손해 본다는 불안감, 그리고 주변에서 “빨리 운용해야 한다”는 말들이 자꾸만 귓가에 맴돈다. 하지만 내 경우는 정반대였다.
내가 IRP에 넣은 펀드는 한국 주식형 펀드였다. 당시 코스피가 2,700대였는데, 한 달 뒤 2,600대로 떨어졌다. 그러니까 초기 금액의 약 3%가 순식간에 사라진 것이다. 돈으로 따지면 250만 원 정도. 그 순간 깨달았다. 퇴직금은 단순히 “자산”이 아니라 “생활비”라는 사실을.
퇴직금을 받은 직후 3개월은 정말 중요한 기간이다. 이 기간에 해야 할 일은 운용이 아니라 진단이다. 내 경우를 예로 들면, 받은 퇴직금 8,400만 원 중에서 먼저 생활비 6개월분 3,600만 원을 따로 떼어놓고 시작해야 했다. 그다음에 남은 4,800만 원을 어떻게 할지 생각했어야 한다. 하지만 나는 그 반대 순서로 했다.
가장 흔한 세 가지 함정
퇴직금을 받은 사람들이 자주 빠지는 실수를 정리해보니 패턴이 보인다.
첫 번째는 한 번에 다 넣는 것이다. 받은 돈을 한두 곳에 전부 투자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그랬다.
처음부터 “한 달에 얼마씩 나눠서 넣을까”라고 생각했다면 훨씬 나았을 텐데, 그냥 가능한 한 빨리 “돈이 일하게” 하고 싶었다. 결과는 지난해 5월부터 지금까지 연 수익률이 마이너스 약 1%다.
생활비가 필요해서 중간에 팔아야 했고, 그때마다 손절을 하게 됐다.
두 번째는 수익률에 집착하는 것이다. 퇴직금을 받으면 “이 돈으로 월 얼마씩 만들 수 있을까”라는 생각부터 한다. 내가 들었던 펀드는 수익률이 높다고 해서 선택했는데, 실제로는 변동성도 컸다. 코스피가 2,500대로 떨어졌을 때 정신이 팔렸다. 자산이 7,900만 원까지 줄었으니까.
세 번째는 세금을 고려하지 않는 것이다. 퇴직금에는 퇴직소득세가 있다. 내 경우 받은 금액이 8,400만 원이었는데, 세금으로 약 840만 원이 나갔다. 그런데 IRP에 넣을 때 세금 혜택이 있다는 건 알았지만, 그 뒤에 또 다른 세금이 있다는 건 몰랐다. 이 돈을 빼낼 때도 소득세가 나간다는 뜻이다.
지금 다시 한다면
지난 1년간 내 퇴직금 계좌를 보면서 배운 점들이 있다.
첫째, 받은 금액의 최소 6개월분은 절대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 내 경우 월 생활비가 약 600만 원이니까, 3,600만 원은 정기예금에 넣고 손을 대지 않아야 했다. 현재 정기예금 금리가 연 3.5~4% 정도인데, 변동성도 없고 확실하다.
둘째, 남은 돈을 한 번에 투자하지 말고 3~4개월에 걸쳐 나눠 넣어야 한다. 이걸 분할 매수라고 하는데, 내가 처음부터 이렇게 했다면 평단가가 훨씬 낮았을 거다. 예를 들어 월 1,200만 원씩 4개월에 걸쳐 넣었다면, 한 번에 넣은 것보다 평균 수익률이 2~3% 더 높았을 것 같다.
셋째, 자산 배분을 미리 정해야 한다. 내가 실수한 부분이다. 한국 주식형 펀드 70%, 정기예금 30%라고 했는데, 주식이 떨어지니까 자꾸만 팔고 싶어졌다. 처음부터 “주식 40%, 채권형 펀드 30%, 정기예금 30%”라고 정했다면 심리적으로 훨씬 안정적이었을 거다.
퇴직금은 서두를 일이 아니다
지난해 5월부터 지금까지 정확히 1년을 보냈다. 내 퇴직금 계좌는 현재 8,200만 원이다. 받은 금액보다 200만 원이 줄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숫자가 별로 신경 쓰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처음 3개월간 했던 실수를 더 이상 반복하지 않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퇴직금은 인생에서 한 번 정도 받는 큰 돈이다. 그래서 더 신중해야 한다. 받은 직후 1주일 안에 결정하는 것, 수익률만 보고 선택하는 것, 전문가도 아닌 주변 사람의 말을 따르는 것. 이 세 가지만 피해도 훨씬 나을 거다. 시간을 갖고, 내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 다음에 천천히 움직이는 것. 그게 퇴직금 운용의 진짜 첫 번째 단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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