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통장을 보고 처음 깨달은 것
작년 여름, 엄마 통장을 정리해드리다가 한 가지를 발견했다. 매달 지출이 생각보다 많았다. 월급이 없는데도 월 230만 원 정도가 나가고 있었다. 의료비, 용돈, 외식, 명절 선물 같은 항목들이 빼곡했다. 그때까지 나는 노후에 월 150만 원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게 얼마나 낙관적인 생각이었는지 그 순간 알았다.
노후 생활비를 예상한다는 건 단순히 ‘지금 월급의 70%’ 같은 공식을 대입하는 게 아니었다. 실제 생활 패턴을 들여다봐야 했다.
지난 3개월, 내 지출을 다시 세어봤다
부모님 통장을 본 이후로 나는 내 지출을 꼼꼼히 추적하기 시작했다. 3개월간 통장과 신용카드 기록을 모두 모아서 항목별로 정렬했다.
먼저 고정 지출부터. 전세 전환 비용으로 월세가 없어졌는데, 대신 관리비가 월 35만 원, 보험료가 월 42만 원이었다. 식비는 생각보다 많았다. 장을 자주 보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월 75만 원 정도였다. 외식이 월 38만 원, 카페 비용이 월 12만 원. 교통비 월 18만 원, 통신비 월 8만 원, 구독료들이 월 9만 원.
변동 지출도 있었다. 옷 구매, 미용실, 의약품, 선물 같은 항목들이 평균 월 50만 원대였다. 특히 명절이나 생일 달에는 100만 원을 넘기도 했다.
3개월 평균을 내보니 월 290만 원이 나왔다. 지금 직장 다닐 때 월 300만 원 정도를 쓰는데, 생각보다 차이가 없었다.
노후에 줄어들 항목, 늘어날 항목
하지만 노후가 되면 모든 게 같을 리 없다. 일단 줄어들 항목들을 생각해봤다. 직장 다닐 때 쓰는 옷 구매는 거의 없을 것 같았다. 교통비도 출퇴근이 없으니 월 5만 원 정도로 떨어질 거 같았다. 직장 동료들과의 모임 비용도 줄어들 것 같았다.
반대로 늘어날 항목도 있었다. 의료비가 가장 크다. 엄마는 혈압약, 당뇨약을 매달 먹고 있었고, 정기 검진비도 들었다. 병원비만 월 30만 원 정도였다. 여행도 늘어날 가능성이 높았다. 지금은 휴가가 정해져 있지만 노후엔 원하는 시기에 갈 수 있으니까.
또 하나는 부모님 부양이다. 아직 할머니가 살아계신데, 매달 용돈을 드려야 했다. 앞으로 10년, 20년을 생각하면 이 부분도 무시할 수 없었다.
현실적으로 계산해보니
지금 지출 290만 원에서 줄어들 항목 약 60만 원을 빼고, 늘어날 항목 약 80만 원을 더했다. 그러면 월 310만 원이 나왔다. 지금보다 더 많다.
물론 인플레이션도 고려해야 했다. 지난 10년간 물가가 연평균 2% 정도 올랐다고 하면, 30년 뒤 물가는 지금의 1.8배 정도가 될 것 같았다. 그럼 월 310만 원이 월 558만 원이 되는 셈이다.
30년을 산다고 가정하면 월 558만 원 × 12개월 × 30년 = 약 2억 원. 이건 너무 큰 숫자였다.
하지만 이건 지금 기준의 생활 수준을 유지했을 때다. 실제로는 나이가 들면서 활동량이 줄어들 수도 있다. 70대 중반쯤 되면 여행도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월 300만 원대에서 관리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결국 정확한 예상은 없다는 걸 알았다
부모님 통장을 본 이후로 나는 노후 생활비 계산에 집착했다. 하지만 계산할수록 느낀 건 예상이란 게 얼마나 불확실한지였다. 건강 상태, 가족 상황, 부동산 보유 여부, 자녀 결혼 시기 등 변수가 너무 많았다.
다만 하나는 확실했다. 지금 당장 자신의 지출을 정확히 아는 것.
부모님 통장을 보고, 내 통장을 분석한 경험이 가장 도움이 됐다. 막연한 공식보다는 실제 생활 데이터가 훨씬 더 신뢰할 만했다.
그래서 이제 나는 매년 1월에 지난해 지출을 정리하고, 노후 예상 생활비를 다시 계산하기로 했다. 정확한 숫자보다는 자신의 생활을 아는 것.
그게 가장 현실적인 노후 준비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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