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 배분 실패하는 사람들, 공통점이 뭘까

자산이 있어도 배분이 막히는 순간

작년 10월, 퇴직금 3,800만 원이 통장에 들어왔다. 그 돈을 어떻게 나눌지 고민하다가 한 달을 날렸다. 은행 적금? 펀드? 주식? 보험? 모든 게 맞는 것 같으면서도 하나를 고르는 순간 불안했다. 결국 일단 정기예금 2,000만 원에 넣고, 펀드 1,200만 원, 그리고 남은 600만 원을 계좌에 방치했다. 그게 지금까지 그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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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42073831 / pixabay

자산 배분이 어려운 건 돈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돈은 충분했다. 문제는 ‘어떤 기준으로 나눌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인터넷에서 찾은 글들은 대부분 “주식 60%, 채권 40%” 같은 일반론만 반복했다. 내 상황에는 맞지 않는 얘기였다.

내 노후가 얼마나 오래 지속되는지 먼저 확인했나

자산 배분의 첫 번째 실수는 기간을 정하지 않은 것이다. 노후가 20년인지 30년인지, 아니면 40년인지에 따라 배분 전략이 완전히 달라진다. 나는 65세부터 90세까지 25년을 기준으로 잡았다. 하지만 이건 개인마다 다르다.

지난 2월에 국민연금공단 홈페이지에서 기대수명 계산기를 썼다. 내 가족력과 건강 상태를 넣으니 평균 87세가 나왔다. 그럼 65세부터 87세까지 22년을 버텨야 한다는 뜻이다. 이 기간이 짧으면 공격적으로 가도 되지만, 길면 안정성을 더 높여야 한다. 자신의 기대수명을 모르면서 자산을 배분하는 건 목적지 없이 짐을 싸는 것과 같다.

매달 얼마를 써야 하는지 현실적으로 계산했나

두 번째 실수는 노후 생활비를 추상적으로 생각한 것이다. “월 200만 원 정도면 괜찮을 거 같은데”라는 식의 느낌으로는 배분이 불가능하다. 내가 한 달에 정확히 얼마를 써야 하는지 알아야 한다.

올해 5월부터 3개월간 현재 생활비를 기록했다. 월세 140만 원, 식비 35만 원, 통신료 8만 원, 의료비 12만 원, 여행과 문화생활 25만 원. 합계는 월 220만 원이었다. 이 숫자가 나올 때까지는 자산 배분을 시작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월 200만 원과 월 300만 원이면 필요한 총자산이 5억 원 vs 7억 5천만 원으로 달라지기 때문이다.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을 정확히 알고 있나

세 번째 실수는 공적연금을 무시하거나 과대평가한 것이다. 국민연금이 얼마나 들어올지, 기초연금이 있을지 없을지에 따라 필요한 자산 규모가 크게 달라진다.

나는 국민연금공단에 전화해서 예상 수령액을 물었다. 65세부터 월 185만 원이 나온다고 했다. 그럼 부족한 건 월 35만 원(220만 원 – 185만 원). 이 35만 원을 22년 동안 버티려면 약 9,200만 원이 필요하다. 국민연금이 없었다면 5억 원 이상을 모아야 했다. 공적연금의 힘이 그렇다.

긴급자금을 따로 빼놨나

네 번째 실수는 긴급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노후에 갑자기 병원비가 필요하거나 손주 결혼식 축의금이 필요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주식을 팔 수는 없다.

금융위원회 기준으로는 긴급자금을 월 생활비의 6개월치 정도 준비하라고 한다. 내 경우 월 220만 원이니 1,320만 원이다. 나는 이 금액을 정기예금으로 따로 빼놨다. 이 돈은 자산 배분에 포함시키지 않는다. 순수 투자 자산은 이 돈을 제외한 나머지다.

인플레이션을 반영했나

다섯 번째 실수는 물가상승을 무시한 것이다. 지금 월 220만 원이 25년 뒤에도 월 220만 원의 가치를 가질 리 없다. 평균 연 약 2% 인플레이션을 가정하면, 25년 뒤 월 220만 원은 지금의 약 월 130만 원 수준의 구매력을 가진다.

역으로 생각하면, 25년 뒤 월 220만 원의 물가 수준을 유지하려면 지금 돈으로 월 370만 원 정도를 써야 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계산하면 필요한 총자산이 달라진다. 이 부분을 빠뜨린다.

위험자산과 안정자산의 비율을 정했나

여섯 번째 실수는 구체적인 배분 비율 없이 “분산 투자”만 생각한 것이다. 분산은 맞는데, 내 상황에 맞는 비율이 뭔지 모르면 의미가 없다.

일반적으로 나이가 들수록 안정자산 비중을 높인다. 65세라면 주식 30~40%, 채권과 현금 60~70% 정도를 기본으로 본다. 하지만 이건 평균이고, 개인의 위험 성향에 따라 달라진다. 나는 심리 테스트를 해보니 중간 정도의 위험 선호도가 나왔다. 그래서 주식 40%, 채권펀드 35%, 현금과 예금 25%로 정했다.

배분한 자산을 주기적으로 재조정할 계획이 있나

일곱 번째 실수는 배분을 한 번 하고 끝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시장이 움직이면 비율이 자동으로 변한다. 주식이 많이 오르면 주식 비중이 45%가 되고, 채권이 오르면 채권 비중이 40%가 될 수 있다. 이때 원래 비율로 돌려놔야 한다.

나는 매년 1월에 내 자산을 점검하기로 했다. 비율이 목표에서 5% 이상 벗어나면 조정한다. 예를 들어 주식이 45%가 되면 일부를 팔아서 40%로 맞춘다. 이렇게 해야 장기적으로 목표 수익률을 유지할 수 있다.

당신의 자산 배분, 이 7가지를 확인했나

지금까지의 내용을 체크리스트로 정리하면 이렇다. 자산 배분을 시작하기 전에 다음을 꼭 확인해보자.

1. 기대수명 확인 — 국민연금공단 홈페이지나 통계청에서 당신의 기대수명을 계산했나? 이게 20년인지 30년인지에 따라 전략이 완전히 달라진다.

2. 월 생활비 정확히 파악 — 지난 3개월 또는 6개월의 실제 생활비를 기록했나? “대략 200만 원 정도”는 배분에 쓸 수 없다. 정확한 숫자가 필요하다.

3. 공적연금 수령액 확인 — 국민연금공단에 전화하거나 홈페이지에서 예상 수령액을 조회했나? 이 숫자가 나와야 부족분을 계산할 수 있다.

4. 긴급자금 분리 — 월 생활비의 6개월치를 정기예금이나 예금통장에 따로 빼놨나? 투자 자산은 이 돈을 제외해야 한다.

5. 인플레이션 반영 — 25년 뒤의 물가를 고려해서 필요 자산을 다시 계산했나? 평균 연 약 2% 인상을 기본으로 본다.

6. 배분 비율 결정 — 당신의 위험 성향과 기대수명을 고려해서 주식, 채권, 현금의 비율을 정했나? 이 비율이 당신의 배분 기준이 된다.

7. 재조정 계획 수립 — 매년 정기적으로 자산을 점검하고, 비율이 목표에서 벗어나면 조정할 계획이 있나? 배분은 한 번이 아니라 지속적인 관리다.

배분이 정해지면 시작이다

이 7가지를 모두 확인하고 나니 비로소 자산 배분이 명확해졌다. 내 경우 필요한 총자산은 약 1억 8천만 원이었고, 이미 3,800만 원이 있으니 부족분은 1억 4천만 원이었다. 남은 직장 생활 동안 매달 얼마씩 모아야 할지도 계산할 수 있었다.

자산 배분의 핵심은 “얼마를 가졌는가”가 아니라 “얼마가 필요한가”를 먼저 아는 것이다. 이 순서를 바꾸면 배분이 막힌다. 당신의 노후는 다른 누구의 노후도 아니다. 일반론이 아니라 당신의 숫자로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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