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금 통장에 그냥 놔둔 첫 달
작년 8월, 회사를 그만뒀다. 퇴직금 5천8백만 원이 입금되던 날 오후 3시 반쯤이었다. 통장 잔액을 확인하고 한참을 멍했다. 그동안 월급 380만 원을 받던 사람이 갑자기 5천만 원대를 봤으니까. 그날 저녁 남편에게 전화했고 “일단 놔두고 생각해보자”고 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다.

한 달 동안 나는 뭘 했나. 통장 이자를 봤다. 정기예금 금리가 약 3%라고 해서 대략 월 16만 원 정도 들어온다고 계산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아직도 월급처럼 돈이 들어오는 기분이었다.
펀드를 샀을 때 처음 느낀 불안
9월 초, 친구가 물었다. “그 돈 어디에 뒀어?” 나는 “예금이지”라고 답했다. 친구가 웃었다. “5천만 원을 약 3% 예금에? 인플레이션 감안하면 돈이 줄어드는 거잖아.” 그 말이 자꾸 떠올랐다. 나는 처음으로 “운용”이라는 단어를 진지하게 생각했다.
9월 중순, 펀드를 사기로 했다. 수익률 좋다는 글들을 읽고 자산 배분형 펀드 3가지를 골랐다. 각각 1천5백만 원씩. 은행원은 추천했고 나는 버튼을 눌렀다. 그 다음 날부터 계좌를 들었다. 오전 10시, 오후 3시, 저녁 8시. 펀드 가격이 약 0% 내렸다 올랐다를 반복하는데 자꾸만 확인하고 싶었다.
2주 뒤 펀드 중 하나가 약 2% 떨어졌다. 나는 “이게 맞나” 싶어서 다시 은행에 전화했다. 은행원은 “정상입니다. 장기 투자하세요”라고 했는데, 정상인 건 알았지만 내 돈이 떨어지는 게 보이니까 불안했다. 그때 깨달았다. 나는 “운용”을 모르고 있었다.
실제로 필요했던 건 전략이 아니라 이해
지난 3개월간 나는 여러 실수를 했다. 첫 번째는 예금과 펀드를 동시에 고민한 것. 예금 5천만 원을 놔두고 펀드를 따로 사면 결국 전체 자산을 제대로 배분하는 게 아니라는 걸 몰랐다. 내가 해야 할 질문은 “펀드가 좋나 예금이 좋나”가 아니라 “5천만 원을 어떻게 나눠서 배치할 건가”였다.
두 번째 실수는 수익률만 봤다는 것. “5년 평균 수익률 약 8%”라는 문구에 끌려서 펀드를 골랐는데, 그 펀드가 내 위험 성향에 맞는지는 생각도 안 했다. 나는 퇴직금으로 생활하는 사람인데 자산 배분형 펀드를 사면서 “좀 더 공격적으로 가자”고 생각했다. 그건 말이 안 됐다.
세 번째는 시간을 너무 짧게 생각한 것. 나는 이 돈을 앞으로 20년, 30년을 써야 한다. 그런데 2주 만에 2% 떨어진 펀드를 보고 불안해했다. 그건 장기 투자가 아니라 그냥 “돈을 놔뒀다”는 것뿐이었다.
지금 하고 있는 방법
지난주에 펀드를 정리했다. 전체 5천8백만 원을 다시 나눴다. 정기예금 2천만 원(월 생활비 3년치), 채권형 펀드 2천만 원(3년~5년 운용), 주식형 펀드 1천8백만 원(5년 이상). 이렇게 나누니까 마음이 좀 편했다.
가장 중요한 건 각 자산의 목적을 정했다는 것. 예금은 “비상금이자 생활비”고, 채권형은 “중기 목표”고, 주식형은 “장기 증식”이다. 이제 펀드 가격이 떨어져도 “아, 채권형이 2% 떨어졌네”라고 생각한다. 전체 자산의 34%가 떨어진 게 아니니까.
펀드 수수료도 확인했다. 같은 자산 배분형 펀드인데 수수료가 약 0%와 약 0%로 달랐다. 5천만 원 기준으로 연 1.65만 원 차이다. 3년이면 50만 원 가까이 차이가 난다. 이런 것도 몰랐다.
퇴직금 운용, 서두르지 마세요
지금 생각해보니 내가 가장 큰 실수는 “빨리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퇴직금이 입금되자마자 다음 달에 펀드를 샀는데, 1~2개월 더 기다렸으면 훨씬 나은 선택을 했을 거다. 시간을 갖고 내 상황을 정리했을 테니까.
지금 퇴직금을 받은 상태라면 처음 1개월은 정기예금에 놔두세요. 그동안 “앞으로 월 생활비가 얼마인지”, “언제까지 이 돈으로 버텨야 하는지”, “혹시 큰 지출 계획이 있는지”를 정리하세요. 그다음에 “남은 돈을 어떻게 배분할 건지” 생각하면 된다.
수익률 비교는 그 다음이다. 지금 나는 월 생활비 280만 원을 쓰고 있고, 앞으로 20년은 이 돈으로 살아야 한다는 걸 알았다. 그러니까 내게 필요한 건 “최고 수익률 펀드”가 아니라 “20년을 버틸 수 있는 균형잡힌 배분”이다. 그걸 아는 순간, 펀드 선택이 훨씬 간단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