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표를 정하기 전에 현실을 마주하기
작년 여름, 재무설계사와 상담을 받았다. 그분이 물었던 첫 질문이 “노후에 얼마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세요?”였다.

나는 “3억 정도면 괜찮을 것 같은데요”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설계사가 웃으면서 말했다.
“지금 월급으로 한 달에 얼마를 쓰세요?” 난 계산기를 꺼내 지난 3개월 통장을 들여다봤다. 생각보다 훨씬 많았다.
그때 깨달았다. 목표금액이라는 건 공중에 떠 있는 숫자가 아니라 현재의 삶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걸.
노후자산 목표금액을 정하는 건 생각보다 어렵다. 인터넷에는 “3억”, “5억”, “10억” 같은 숫자들이 떠다니고, 금융상품 광고에서는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숫자들은 누군가의 기준일 뿐, 당신의 기준이 아니다. 목표를 정하기 전에 먼저 확인해야 할 것들이 있다.
체크리스트 1 : 지금 월평균 생활비가 정확한가
가장 기본이 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지난 12개월 통장을 펼쳐서 실제로 얼마를 썼는지 계산해보자. “대략 월 200만 원 정도”라고 말하지만, 실제로 계산해보면 다르다. 나는 처음에 월 180만 원이라고 생각했는데 통장을 정리하니 월평균 215만 원이었다.
카드, 현금, 이체, 자동이체까지 모두 포함해야 한다. 특히 자동이체되는 항목들을 놓치기 쉽다. 보험료, 구독료, 회비 같은 것들이 한 달에 얼마나 되는지 정확히 알아야 한다. 스프레드시트를 열어서 지난 12개월을 월별로 정렬해보자. 그러면 패턴이 보인다. 어떤 달은 명절 때문에 많고, 어떤 달은 차량 정비비나 의료비가 들어간다.
자가 점검 : 지난 12개월 통장에서 실제 생활비를 월별로 계산했는가? 자동이체 항목을 모두 포함했는가?
체크리스트 2 : 노후의 생활비가 현재와 얼마나 다를지 예상했는가
노후에 생활비가 줄어든다고 생각하는 건 흔한 실수다. 확실히 줄어드는 항목들이 있다. 직장 출퇴근 교통비, 회식비, 업무 관련 복장비 같은 것들이 없어진다. 하지만 늘어나는 항목도 있다. 의료비가 증가하고, 여행이나 취미 활동에 더 많이 쓸 수도 있다. 부모님 봉양비, 손주 용돈도 고려해야 한다.
지난 6개월간 나는 의료비를 따로 추적했다. 치과 검진, 건강검진, 안경, 약국 비용까지 모두 합치니 월평균 18만 원이었다. 지금 40대인데 60대, 70대가 되면 이게 몇 배로 늘어날 수도 있다. 또한 노후에 자녀가 결혼하거나 손주가 생기면 예상 밖의 큰 지출이 발생한다.
자가 점검 : 현재 생활비에서 없어질 항목과 새로 생길 항목을 나열했는가? 의료비, 여행비, 용돈 같은 항목을 고려했는가?
체크리스트 3 : 국민연금 수령액을 정확히 알고 있는가
국민연금공단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본인의 예상 수령액을 확인할 수 있다. 나는 작년에 처음 확인했는데, 생각보다 적었다. 월 180만 원 정도였다. 물론 인상이 있을 테지만, 현재 기준으로는 그 정도다. 이 숫자가 중요한 이유는 노후자산 목표금액을 정할 때 “국민연금으로 얼마를 보충할 수 있는가”를 계산하기 위함이다.
예를 들어 월 생활비가 250만 원인데 국민연금이 180만 원이라면, 부족한 70만 원을 자산에서 충당해야 한다. 이 70만 원을 30년 동안 받으려면 얼마가 필요한가? 대략 2억 5,000만 원 정도가 필요하다. (물론 이건 인플레이션을 고려하지 않은 단순 계산이다.)
자가 점검 : 국민연금공단에서 본인의 예상 수령액을 확인했는가? 그 금액이 노후 생활비의 몇 퍼센트를 차지하는가?
체크리스트 4 : 퇴직금이나 퇴직연금을 따로 계산했는가
회사원이라면 퇴직금이나 퇴직연금이 있을 것이다. 이건 노후자산의 중요한 부분이다. 지난 2년간 연봉이 월 400만 원이라면 퇴직금은 대략 8,000만 원 정도가 될 것이다. (정확한 계산은 회사 규정에 따라 다르다.) 이 돈이 언제, 어떤 형태로 받을 수 있는지 인사팀에 확인해야 한다.
또한 DC형 퇴직연금에 가입되어 있다면, 현재 적립액이 얼마인지도 확인해야 한다. 나는 작년 6월에 확인했을 때 6,500만 원이 적립되어 있었다. 이 금액은 계속 증가할 것이다. 이런 식으로 예상 퇴직금과 퇴직연금을 모두 더하면, 노후에 받을 수 있는 초기 자산이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있다.
자가 점검 : 퇴직금 예상액을 계산했는가? 퇴직연금 현재 적립액을 확인했는가? 둘을 합치면 얼마인가?
체크리스트 5 : 인플레이션을 고려했는가
지금 월 250만 원으로 생활하는 사람이 30년 뒤에도 월 250만 원으로 생활할 수 있을까? 절대 불가능하다. 물가가 올라가기 때문이다. 지난 20년을 보면 평균 인플레이션율은 연 2% 정도였다. 만약 이 추세가 계속된다면 30년 뒤에는 월 250만 원이 월 450만 원 정도의 가치를 가져야 한다.
즉, 노후자산 목표금액을 정할 때는 현재 생활비에 인플레이션을 반영해야 한다. 간단한 계산 방법은 현재 월 생활비에 1.02를 30번 곱하는 것이다. (1.02^30 = 1.81) 현재 월 250만 원이면 30년 뒤에는 월 450만 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야 한다는 뜻이다.
자가 점검 : 현재 월 생활비에 인플레이션을 반영했는가? 30년 뒤 월 생활비가 얼마가 될지 계산했는가?
체크리스트 6 : 노후 기간을 몇 년으로 설정했는가
이것도 중요한 부분이다. 65세부터 95세까지 30년을 산다고 가정할 것인가? 아니면 100세까지 35년을 산다고 가정할 것인가?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현재 65세 남성의 평균 기대수명은 약 20년(85세), 여성은 약 25년(90세)이다. 하지만 “평균”이라는 건 위험한 기준이다. 건강한 생활을 하고 있다면 95세, 100세까지 살 수도 있다.
나는 보수적으로 35년을 기준으로 계산하기로 했다. 65세부터 100세까지다. 이렇게 설정하면 목표금액이 커지지만, 나중에 “돈이 부족하다”는 상황을 피할 수 있다. 반대로 낙관적으로 30년을 기준으로 설정하면 목표금액은 작아지지만, 위험성이 높아진다.
자가 점검 : 노후 기간을 몇 년으로 설정했는가? 그 근거는 무엇인가?
체크리스트 7 : 자산의 4% 규칙을 알고 있는가
미국의 은퇴 자산 관리 이론 중에 “4% 규칙”이라는 게 있다. 이건 연간 인출률이 자산의 4% 이하라면 자산이 30년 이상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는 이론이다. 역으로 계산하면, 월 250만 원(연 3,000만 원)이 필요하다면 자산은 최소 7억 5,000만 원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3,000만 원 ÷ 0.04 = 7억 5,000만 원)
물론 이건 국민연금이 없을 때의 계산이다. 국민연금 월 180만 원(연 2,160만 원)이 있다면 부족한 월 70만 원(연 840만 원)만 자산에서 충당하면 된다. 그러면 자산은 2억 1,000만 원 정도면 충분하다. (840만 원 ÷ 0.04 = 2억 1,000만 원) 이런 식으로 역산하면 본인에게 필요한 정확한 목표금액을 정할 수 있다.
자가 점검 : 4% 규칙을 적용해서 필요한 목표금액을 역산했는가? 국민연금을 반영했는가?
목표는 정해지는 게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
이 7가지를 모두 확인하고 계산하면 “나에게 필요한 노후자산 목표금액”이 나온다. 그 숫자는 인터넷에서 봤던 “3억”, “5억” 같은 일반적인 기준과는 다를 것이다. 당신의 현재 생활비, 국민연금, 퇴직금, 그리고 인플레이션을 모두 반영한 당신만의 숫자다.
작년에 나는 이 과정을 거쳐서 목표금액을 5억 2,000만 원으로 정했다. 처음 생각했던 “3억 정도”와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그 숫자는 정확했다. 근거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나는 그 목표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