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가을, 통장을 정리하다가 깨달은 것
작년 가을 어느 주말 오후, 지난 5년간의 통장 내역을 쭉 훑어봤다. 월급이 들어오고 생활비가 나가고 적금이 자동이체되고.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게 있었다. 연금저축에 들어간 돈이 매달 다르고, 펀드 계좌는 반년 동안 입금이 없었다. 노후를 위해 뭔가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흐릿한 상태였다.

그날 저녁에 엑셀을 켜서 지금까지 모아진 자산을 전부 써내려 봤다. 국민연금 예상 수령액, 퇴직금 규모, 현재 투자 자산, 보험료로 매달 나가는 돈. 한 시간 반을 걸려 정리하고 보니 한 가지가 명확해졌다. 나는 노후를 준비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준비하는 척만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현재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부터
노후를 준비한다는 건 결국 숫자를 마주하는 일이다. 숫자가 없으면 방향이 없다.
먼저 해야 할 일은 지금 내가 가진 자산을 모두 적는 것이다. 통장 잔액, 적금, 펀드, 주식, 보험 해약환급금.
이걸 다 더하면 현재 자산이 나온다. 나는 이 과정에서 3년 전에 들었던 보험의 해약환급금이 생각보다 크다는 걸 알았다.
월 12만 원씩 3년을 낸 건데, 돌려받을 수 있는 액수가 약 380만 원이었다. 그 전까진 그냥 ‘보험료’로만 생각했지, 자산으로 본 적이 없었다.
다음은 매달 나가는 고정 지출을 파악하는 것이다. 연금저축 월 30만 원, 펀드 자동이체 월 20만 원, 보험료 월 12만 원. 이렇게 매달 62만 원이 노후를 위해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이 중에 정말 필요한 것이 뭔지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세제 혜택을 먼저 챙기되, 맹목적으로는 안 된다
연금저축은 세제 혜택이 있다. 연금저축펀드는 400만 원까지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고, 연금저축보험은 300만 원까지다. 이 숫자만 보면 연금저축펀드가 유리해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는 다르다. 내 경우 월급이 세전 350만 원 정도인데, 연금저축에 월 30만 원을 넣고 있다.
연 360만 원이니 소득공제 대상이 된다. 이걸 통해 절약할 수 있는 세금이 약 54만 원이다.
괜찮은 수치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연금저축펀드는 수익률이 연 3~4% 정도인데, 연금저축보험은 보장 수익률이 2% 정도다. 1년 뒤 수익률 차이는 크지 않지만, 20년을 보면 복리 효과로 수백만 원이 달라진다.
결국 세제 혜택과 수익률을 함께 봐야 한다. 나는 작년 초에 연금저축펀드를 추가로 개설했다. 이미 들어있던 보험료는 유지하고, 새로 들어가는 돈은 펀드로 돌렸다. 이렇게 하면 세제 혜택도 크고, 수익률 리스크도 분산할 수 있다.
국민연금을 외면하면 안 되는 이유
국민연금은 뭔가 손해 보는 것처럼 느껴진다. 월급에서 빠져나가고, 받을 때가 언제인지도 불확실하고, 수령액이 얼마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국민연금은 무시하고 개인 자산만 모은다.
그런데 이건 큰 실수다. 국민연금은 인생 보험이다. 내가 100세까지 산다면, 매달 국민연금을 받는다. 개인이 준비한 자산은 언젠가는 바닥날 수 있지만, 국민연금은 죽을 때까지 나온다. 나는 작년에 국민연금공단에 가서 예상 수령액을 확인했다. 60세부터 받기로 했을 때 월 약 150만 원 정도였다. 이 숫자만으로도 기본적인 생활비는 충당할 수 있다.
그 이후로 나는 국민연금을 다르게 봤다. 이건 내가 반드시 받아야 하는 기본 생활비 보장이고, 그 위에 개인이 추가로 모은 자산이 여유분이 되는 구조다. 이렇게 생각하니 노후 계획이 훨씬 명확해졌다.
정기적으로 점검하지 않으면, 계획은 계획일 뿐이다
지난 5년간 나는 노후를 준비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실은 처음 설정한 것을 그냥 방치하고 있었다. 연금저축은 들었고, 적금은 자동이체되고 있었지만, 그게 맞는 선택인지는 한 번도 확인하지 않았다.
작년 가을 이후로 나는 6개월마다 통장을 정리하기로 했다. 현재 자산이 얼마인지, 매달 얼마를 모으고 있는지, 그 속도가 충분한지. 이렇게 정기적으로 확인하면 흐릿했던 계획이 선명해진다. 지난 3개월간 펀드 수익률이 약 5%가 나왔다는 걸 알았을 때, 비로소 ‘투자하고 있다’는 실감이 났다.
노후준비는 한 번에 완성되는 게 아니다. 현재 상황을 파악하고, 세제 혜택을 챙기고, 국민연금을 기반으로 삼고, 정기적으로 점검하는 과정의 반복이다. 이 네 가지만 확실히 해도, 노후가 훨씬 가까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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