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회사에서 알려주지 않는 것들
작년 가을 이직할 때 처음 퇴직연금 선택지를 받았다. 회사에서 받은 안내장에는 ‘DB형’, ‘DC형’ 두 가지가 있다고 적혀 있었다. 그걸 읽고 바로 가입했는데, 3개월 뒤 다른 직장 동료와 얘기하다가 깨달았다. 내가 선택한 상품이 뭔지, 왜 선택했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가입했다는 걸.

퇴직연금은 한 번 선택하면 바꾸기 복잡하다. 그래서 처음부터 제대로 알고 가입하는 게 중요한데, 대부분의 회사는 ‘이 두 가지 중 고르세요’ 정도만 말해준다. 그 사이의 차이가 뭔지, 어떤 게 내 상황에 맞는지는 본인이 알아봐야 한다.
DB와 DC, 결국 누가 책임지는가
DB형은 ‘확정급여형’이다. 회사가 퇴직금 수준을 보장해준다. 내가 투자를 잘못하든 못하든 회사가 정해진 금액을 준다. DC형은 ‘확정기여형’인데, 회사가 매달 정해진 금액을 입금해주고, 그 돈을 내가 어디에 투자할지 결정한다.
차이는 간단하다. 위험이 누구에게 있는가다. DB는 회사가 지고, DC는 내가 진다. 대신 DC형은 내가 투자를 잘하면 더 많이 받을 수 있다.
나는 DC형을 선택했다. 이유는 회사 규모가 작아서 DB형 적립금이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실제로 가입하기 전에 회사 재무 상태를 확인해봤는데, 매년 이익이 줄어드는 중이었다. 만약 회사가 어려워지면 DB형으로 약속한 금액을 못 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입 직후 3주, 투자처 선택이 생각보다 복잡했다
DC형으로 가입하니 투자처를 정해야 했다. 회사에서 제시한 옵션은 5개였다. 일반 적립금 펀드 3개, 수익 추구형 펀드 2개. 수익률을 비교해보니 지난 1년간 가장 높은 상품이 연 약 6% 정도였다.
하지만 여기서 주의할 점이 있다. 펀드의 수익률은 과거 실적이고, 앞으로의 수익을 보장하지 않는다. 더 중요한 건 수수료다. 펀드마다 연 약 0%에서 약 1% 정도의 수수료가 붙는다. 연 약 6%를 벌었는데 수수료가 약 1%면 실제 수익은 약 5%가 되는 셈이다.
나는 가장 보수적인 상품을 선택했다. 연 약 3% 정도의 수익을 기대하는 상품인데, 수수료가 약 0%로 가장 낮았다. 결국 내 입장에서는 연 약 2% 정도를 기대할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1개월 뒤, 세제 혜택을 놓치고 있었다
가입한 지 1개월쯤 지났을 때 세무사 친구와 얘기하다가 깨달은 게 있다. DC형 퇴직연금은 추가로 개인형 퇴직연금(IRP)으로 옮길 수 있다는 것이었다. IRP로 옮기면 세제 혜택이 달라진다.
DC형에서 받는 급여는 퇴직금으로 분류되어 세금이 우대된다. 하지만 IRP로 옮기면 연금저축처럼 취급되어 추가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내 경우 연 400만 원 한도 내에서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
이건 회사 안내장에 한 줄도 없었다. 나중에 알아봤더니 많은 직장인들이 이 부분을 모르고 있었다. 특히 30대 후반부터 40대 초반 직장인들 중에 이미 퇴직금을 받은 경험이 있는 사람들도 DC형 퇴직연금의 IRP 이전 옵션을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3개월 차, 선택 후 바꾸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았다
가입 후 3개월이 지났을 때 투자 상품을 바꾸고 싶어졌다. 내가 선택한 보수적 상품의 수익률이 약 1%였는데, 다른 상품은 약 4%를 기록하고 있었다. 그래서 변경을 신청했다.
그런데 변경 절차가 생각보다 길었다. 신청서를 작성하고, 회사 담당자 승인을 받고, 운영사에서 처리하는 데 2주가 걸렸다. 그 사이에 시장이 변했고, 결국 처음 선택한 상품이 더 안정적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론은 처음부터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퇴직연금은 장기 자산이고, 한 번 선택하면 바꾸는 데 시간과 비용이 든다.
6개월 뒤, 정말 중요했던 것
가입한 지 6개월이 지났을 때 내 계좌를 정리해봤다. 회사에서 입금된 금액은 월 180만 원이었다. 6개월이면 1,080만 원이 쌓였고, 수익은 약 18만 원 정도였다. 생각보다 적었지만, 이건 처음부터 예상한 수준이었다.
더 중요한 건 다른 것이었다. 같은 회사 동료들과 비교해보니 DB형을 선택한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그들은 투자 선택을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회사가 정해진 금액을 보장해주니까.
하지만 나는 DC형을 선택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이유는 회사가 작고 불안정해 보였기 때문이다. 만약 회사가 어려워져서 DB형 적립금이 부족해지면, 내 퇴직금이 줄어들 수 있다. 그보다는 내가 보수적으로 관리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퇴직연금 선택에서 가장 중요한 건 수익률이나 세제 혜택이 아니었다. 회사의 재무 상태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었다. DB형이 유리한지, DC형이 유리한지는 회사가 앞으로 얼마나 안정적인가에 따라 달라진다.
가입 전에 반드시 확인해야 할 것들
지금 누군가 퇴직연금을 선택해야 한다면, 나는 이렇게 조언하고 싶다. 먼저 회사의 최근 3년 재무제표를 확인해보자. 이익이 줄어들고 있다면 DB형보다 DC형이 더 안전할 수 있다. 반대로 회사가 안정적이고 매년 이익이 늘어나고 있다면 DB형도 좋은 선택지다.
DC형을 선택했다면 투자 상품 선택에 신중해야 한다. 과거 수익률만 보지 말고, 수수료를 꼭 확인하자. 연 1%의 수수료 차이는 30년 뒤에 수백만 원의 차이가 된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가입한 후에도 정기적으로 점검하자. 특히 회사 상황이 급격히 변했을 때는 운영사에 문의해서 상품 변경이 가능한지 확인해보자. 나처럼 3개월 뒤에 바꾸려고 해서 번거로움을 겪을 수도 있으니까.
퇴직연금은 내 노후의 기초가 된다. 그래서 처음부터 제대로 알고 선택하는 게 중요하다. 회사가 안내해주지 않는 부분까지 직접 알아보고, 내 상황에 맞는 선택을 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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