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장을 정리하다가 발견한 것
작년 가을, 노후 자금을 본격적으로 준비하기로 결심했다. 펀드도 알아보고, 연금보험도 비교했다. 그런데 막상 통장을 들여다보니 문제가 있었다. 월급 들어온 통장, 비상금 통장, 적금 통장이 뒤죽박죽이었다. 어디가 어디인지 모를 정도였다. 그 상태로 자산 배분을 하려니 답답했다. 결국 3주를 통장 정리에만 썼다.

처음부터 자산 배분 비율을 외울 필요는 없다. 그보다 중요한 게 있다는 걸 깨달았다.
현재 자산이 정확히 얼마인지 파악하기
노후 자금 계획의 첫 단계는 의외로 단순하다. 지금 내가 가진 돈이 정확히 얼마인지 아는 것이다. 통장, 펀드, 적금, 보험 해약환급금까지 모두 종이에 적어봤다. 그 과정에서 3년 전에 들었던 보험료가 얼마나 올랐는지 처음 알았다. 월 12만 원이던 게 15만 원이 되어 있었다.
현재 자산을 파악하면 그 다음이 보인다. 지금부터 매달 얼마를 모을 수 있는지, 어디에 우선순위를 둘지가 자동으로 결정된다. 나는 월급에서 고정 지출을 빼면 약 28만 원을 자유롭게 쓸 수 있었다. 이 금액을 기준으로 계획을 세웠다.
월급 외 수입이 있는지 확인하기
직장인이라면 월급만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작은 수입들이 있다. 지난겨울에 받은 보너스는 월급의 1.5개월분, 설과 추석 명절에 받는 상여금, 가끔 하는 프로젝트 수입 등이다. 이런 비정기 수입을 따로 계산하지 않으면 자금 계획이 흔들린다.
나는 월급은 생활비와 정기적 투자에, 보너스와 명절 상여금은 비상금과 추가 자산 배분에 쓰기로 정했다. 이렇게 하니 계획이 훨씬 현실적이었다.
5년 뒤, 10년 뒤 필요한 금액을 구체적으로 상상해보기
노후 자금이라고 하면 65세 이후를 생각하는데, 그건 너무 멀다. 먼저 5년 뒤를 생각해봤다. 아이들 교육비, 집 수리비, 자동차 교체 비용 같은 것들이다. 5년 뒤에 필요한 금액을 역산하면 지금 매달 얼마를 모아야 하는지가 나온다.
그 다음 10년 뒤를 생각했다. 10년 뒤는 아이들 대학 입시 시기였다. 대략 2000만 원대의 목표금액을 잡았다. 이렇게 단계별로 목표를 나누니 막연한 노후 준비가 구체적인 숫자로 변했다.
현재 가입된 보험과 연금을 정리하기
자신이 가진 보험을 정확히 모른다. 나도 그랬다. 직장에서 가입해준 퇴직연금, 개인적으로 들었던 연금보험 2개, 어릴 때부터 들었던 학자금 보험까지. 보험사 앱을 하나씩 열어보니 월 47만 원을 보험료로 내고 있었다.
그 중 일부는 필요가 없었다. 어릴 때 들었던 학자금 보험은 이미 아이가 대학을 졸업했는데도 계속 내고 있었다. 해약하는 과정에서 환급금으로 약 340만 원을 받았다. 이 금액을 연금저축펀드에 일시 납입했다. 보험료를 줄이고, 더 효율적인 상품으로 옮기는 과정이었다.
세금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상품부터 채우기
노후 자금 계획에서 놓치기 쉬운 부분이 세제 혜택이다. 연금저축펀드는 연 400만 원까지 납입하면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다. 나는 지난해 300만 원을 납입했는데, 올해는 400만 원을 채우기로 했다. 월 약 33만 원씩 자동이체로 설정했다.
개인형 IRP도 마찬가지다. 연금저축과 합쳐서 최대 900만 원까지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세금 혜택을 먼저 받고 나머지 금액을 일반 투자에 쓰는 게 훨씬 효율적이다.
위험 자산과 안전 자산의 비율 정하기
자산 배분이라고 하면 주식 펀드와 채권 펀드의 비율을 생각한다. 나는 현재 나이가 48세이고, 은퇴까지 17년이 남았다. 일반적으로 나이가 어릴수록 주식 비율을 높일 수 있다. 나는 주식 70%, 채권 30%로 정했다.
다만 이건 절대적인 정답이 아니다. 같은 나이라도 성향이 다르면 달라진다. 나는 지난 3년간 주식 투자를 하며 수익과 손실을 모두 경험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70%라고 정했다. 만약 주식 변동성에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50%나 40%로 낮추는 게 맞다.
정기적으로 재점검하는 주기 정하기
자금 계획을 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계획을 지키고 조정하는 게 더 중요하다. 나는 분기마다 한 번씩 통장을 정리하기로 했다. 3개월마다 목표대로 모아지고 있는지, 수익률은 어떻게 되는지 확인한다.
분기 점검에서 목표 금액에 미달하면 다음 달에 추가로 모은다. 수익률이 예상보다 낮으면 자산 배분을 조정한다. 이렇게 작은 수정을 계속하면 큰 실수를 피할 수 있다.
노후 자금 계획, 숫자부터 시작
노후 준비라는 말이 무겁게 들렸던 이유는 추상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통장을 들여다보고, 현재 자산을 파악하고, 구체적인 목표 금액을 정하니 달라졌다. 이제 매달 모으는 28만 원이 단순한 저축이 아니라 목표를 향한 한 걸음이 되었다. 자금 계획이란 결국 지금 가진 것을 정확히 아는 것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