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표금액을 정하기로 결심한 날
작년 11월, 통장에 7천만 원이 모였다. 그 날 저녁 엑셀을 켜서 처음으로 ‘노후자산 목표금액’이라는 항목을 만들었다. 인터넷에서 본 자료들은 모두 ‘3억에서 5억 사이’라고 했다. 나는 보수적으로 4억으로 정했다. 남은 3억 3천만 원을 앞으로 몇 년에 걸쳐 모아야 한다는 계산이 나왔다. 월급의 40%를 저축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날은 기분이 묘했다. 목표가 생겼다는 것이 다행스럽기도 했고, 동시에 그 규모가 현실적인지 의심스럽기도 했다.
목표금액 정한 직후, 첫 달의 허상
11월 말, 월급이 들어왔다. 계획대로라면 월 180만 원을 저축해야 했다. 나는 그 금액을 자동이체로 설정했다. 심리적으로는 매우 만족했다. 목표를 향해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이 좋았다.
하지만 12월이 되자 현실이 달랐다. 명절 준비비 60만 원, 연말 회식비 35만 원, 예상 못 한 의료비 24만 원이 나갔다. 결국 저축은 월 120만 원에 그쳤다. 목표의 67%만 달성한 것이다. 처음으로 ‘내 목표금액이 너무 높은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1개월 뒤, 목표금액을 재검토하기 시작
1월 초, 나는 목표금액 4억을 다시 살펴봤다. 이 숫자가 어디서 나온 건지 확인해보니 ‘일반적인 은퇴 후 생활비’라는 막연한 기준이었다. 내 경우는 어떨까 생각해봤다.
지난 1년간 내 평균 월 생활비는 약 210만 원이었다. 이 중 집세 60만 원은 은퇴 후 사라질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면 실제 필요한 월 생활비는 150만 원 정도였다. 만약 65세부터 85세까지 20년을 산다면 필요한 금액은 150만 원 × 12개월 × 20년 = 3억 6천만 원이었다.
하지만 여기에 물가상승률 (시점에 따라 다름)를 반영하면 좀 더 높아진다. 대략 4억 2천만 원 정도가 현실적이었다.
내가 정한 4억이 완전히 틀린 건 아니었다. 다만 그 안에 여유가 충분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2개월 차, 저축 방식을 바꾸기로 결정
1월과 2월을 거치면서 패턴이 보였다. 월급에서 자동이체로 180만 원을 빼면, 남은 금액으로는 생활이 빠듯했다. 결국 저축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그 스트레스가 쌓였다.
나는 전략을 바꿨다. 무리해서 월 180만 원을 저축하는 대신, 현실적으로 저축 가능한 월 120만 원에 맞추기로 했다. 그리고 목표금액을 4억에서 3억 5천만 원으로 낮췄다. 이렇게 하면 약 29년이 걸린다. 지금 36살이니 65살에 도달할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목표금액을 낮추는 게 패배처럼 느껴졌지만, 실제로는 더 현실적인 계획을 세운 것이었다.
3개월 차, 저축 방식 조정 후의 변화
3월 말이 되자 상황이 달라졌다. 월 120만 원을 꾸준히 저축할 수 있게 되었다. 스트레스도 줄었다. 동시에 나는 다른 방법을 추가했다. 보너스 시즌에 받은 500만 원 중 250만 원을 연금저축펀드에 넣었다. 이렇게 하면 연간 저축액은 월 120만 원 × 12개월 + 250만 원 = 1,690만 원이 된다.
1,690만 원으로 3억 5천만 원을 모으려면 약 20년이 걸린다. 지금부터 시작하면 56살에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원래 계획보다 9년 빨라진 것이다.
이 변화가 가능했던 이유는 목표금액을 현실에 맞춘 후, 그에 맞는 저축 방식을 찾았기 때문이었다.
3개월을 돌아보며
지난 3개월간 깨달은 가장 중요한 것은 이것이었다. 목표금액은 정하는 것보다 조정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처음 정한 4억이라는 숫자는 필요 없었다. 내 생활비, 내 저축 능력, 내 은퇴 시기를 고려해서 역산한 3억 5천만 원이 훨씬 더 의미 있었다.
지금도 여전히 부족할 수 있다. 물가가 더 오를 수도 있고, 예상 못 한 지출이 생길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그 목표를 향해 움직이고 있다는 확신이 있다. 그리고 그 확신이 가장 큰 자산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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