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표금액을 정하는 게 정말 어려웠던 이유
2023년 초, 노후자금이 얼마나 필요한지 계산해보겠다고 다짐했다. 인터넷에서 찾은 공식대로 월 생활비 300만 원에 30년을 곱했다. 그러니 10억 8천만 원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 숫자를 보는 순간 계산기를 내려놨다. 현실과 너무 멀었다.

지난 3년간 다양한 방식으로 목표금액을 다시 세워봤다. 전문가 글도 읽고, 앱도 깔아봤다. 그런데 매번 다른 숫자가 나왔다. 보수적인 계산은 5억, 낙관적인 계산은 2억 5천. 어느 것이 맞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다 깨달았다. 정확한 목표금액보다 중요한 게 있다는 걸.
현재 통장의 상태부터 파악해야 한다
작년 가을, 은행 앱을 정리하다가 놀랐다. 지난 5년간 모아놓은 적금과 정기예금이 5개 계좌에 흩어져 있었다. 어디에 얼마가 있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매달 자동이체로 돈이 빠져나가고 있었지만, 그 돈들이 어떤 속도로 늘어나고 있는지 전혀 추적하지 않았다.
통장을 정리하는 데 3시간이 걸렸다. 현재 자산을 모두 모으니 1억 2천만 원이었다. 그 순간 알았다. 지금 내 상태를 정확히 아는 것이 목표금액을 정하는 것보다 먼저였다. 현재 1억 2천에서 출발하는 계획과 현재를 모르고 세우는 계획은 완전히 달랐다.
많은 사람이 목표부터 세우려고 한다. 하지만 현재 위치를 모르면 목표도 의미가 없다. 내가 놓친 3년이 바로 그것이었다.
월급의 몇 퍼센트를 돌려야 할까
현재 자산을 파악한 후, 다음 질문이 생겼다. 매달 얼마를 노후자금으로 돌려야 할까. 전문가들은 보통 월급의 10~20%를 권한다. 내 월급이 420만 원이니, 42만 원에서 84만 원 사이를 의미했다.
처음 6개월간 월 80만 원을 저축했다. 그런데 3개월 후부터 힘들었다. 급여가 고정이 아니었고, 예상치 못한 지출이 자꾸만 생겼다. 결국 월 50만 원으로 줄였다. 그리고 3개월 뒤 다시 월 45만 원으로 내렸다. 현실적인 수준을 찾는 데 1년이 걸렸다.
내가 지금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수준은 월 45만 원이었다. 이 금액에서 출발하는 게 맞았다. 불가능한 목표보다 지금 할 수 있는 현실적인 금액이 훨씬 중요했다.
지금부터 30년 뒤를 생각하는 방식
2026년 초, 계산을 다시 해봤다. 현재 자산 1억 2천만 원, 월 저축액 45만 원. 이 속도라면 30년 뒤 얼마가 될까. 단순 계산으로 월 45만 원 × 12개월 × 30년 = 1억 6천 2백만 원. 현재 1억 2천에 더하면 2억 8천 2백만 원이다.
하지만 이건 이자를 고려하지 않은 수치다. 만약 평균 연 3%의 수익률을 낸다면 약 4억 원대가 된다. 연 4%라면 4억 5천만 원 정도다. 이제 목표금액이 현실적으로 보였다.
월 300만 원으로 생활하려면 4억 원이 필요하다는 계산도 있지만, 내 경우 월 200만 원 정도면 충분하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럼 2억 원이면 충분하다. 이미 1억 2천을 모았으니, 앞으로 8천만 원만 더 모으면 된다. 월 45만 원이면 약 15년 안에 가능하다.
이렇게 계산하니 처음 10억 8천만 원이라는 숫자가 얼마나 추상적이었는지 보였다. 내 상황에 맞는 현실적인 목표가 훨씬 더 동기부여가 됐다.
통장을 나누는 건 그 다음
현재 자산을 파악하고, 월별 저축액을 정한 뒤, 목표금액을 세운 후에야 통장을 나누는 게 의미가 있다. 많은 글들이 통장 쪼개기부터 시작하라고 하지만, 그건 순서가 틀렸다.
지금 내 통장 구조는 이렇다. 월급 통장에서 45만 원이 자동으로 빠져나가 ‘노후자금’ 통장으로 간다. 그 통장에서 월 30만 원은 적금으로, 월 15만 원은 펀드로 나뉜다. 이 구조는 현재 상황과 목표를 정확히 파악한 후에야 만들 수 있었다.
만약 1년 전에 이렇게 설정했다면, 지금쯤 월급이 부족해서 통장을 다시 정리했을 거다. 하지만 지금은 이 흐름이 자연스럽다. 왜냐하면 내가 정말 할 수 있는 수준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 달부터 시작할 수 있는 것
노후자금 계획을 세우는 순서는 이렇다. 첫째, 지금 당신의 통장에 얼마가 있는지 정확히 파악하라. 둘째, 현실적으로 매달 얼마를 돌릴 수 있는지 확인하라. 셋째, 그 속도로 30년 뒤 얼마가 될지 계산하라. 넷째, 당신이 필요한 생활비가 정말 월 300만 원인지 다시 생각해보라. 다섯째, 그 모든 것을 바탕으로 통장을 나누라.
이 순서를 무시하고 통장부터 나누거나, 불가능한 목표부터 세우면 3년이 흘러도 실행하지 못한다. 내가 그랬으니까.